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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날씨를 담은 향기, '제르마나제이' 향수 브랜드 탐방기

by cjsend1024 2025. 7. 26.

제주 로컬 자연을 원료로 한 향수와 공간 브랜드의 매력

제주의 날씨를 담은 향기, '제르마나제이' 향수 브랜드 탐방기
제주의 날씨를 담은 향기, '제르마나제이' 향수 브랜드 탐방기

 

향기로 기억되는 여행, 제르마나제이를 만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제주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모래냄새, 바람냄새, 귤껍질 냄새, 비에 젖은 숲의 향기까지.
이 모든 감각적 기억을 ‘향수’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담아낸 브랜드가 있다. 바로 ‘제르마나제이(Germana J)’다. 제주도 서쪽의 조용한 마을, 한적한 돌담 골목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이 브랜드는 제주 로컬의 감각을 향기라는 감각 언어로 풀어낸다.

‘제르마나제이’는 단순히 향수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공기와 빛, 식물과 날씨까지도 함께 포장해서 파는 브랜드다. 창립자는 향료 디자이너 출신으로, 서울에서 일하다 제주로 내려와 자연을 향기로 번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주에 머물면서 바람, 비, 숲, 해안가의 공기를 채취하고 분석하며, 그 지역의 정서를 하나의 노트(note)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향수를 만든다.

가장 인기 있는 라인은 제주 동백숲을 모티브로 한 ‘Winter Bloom’, 우도 바닷바람을 형상화한 ‘Salt on Skin’, 그리고 한라산 숲길의 이슬과 토양을 담은 ‘Forest Cloud’다. 각각의 향기는 단순한 향조가 아니라, 그 지역의 ‘날씨’를 담았다. 제르마나제이는 이 향수들을 “향기 여행 티켓”이라 부른다.

“향수병을 열면, 제주도 어느 계절의 어느 순간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제주 로컬 자연을 원료로 쓰는 진짜 이유


제르마나제이의 진짜 매력은 향기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지속 가능성에 있다. 대부분의 향수 브랜드들이 해외산 에센셜 오일이나 합성 향료를 쓰는 반면, 제르마나제이는 가능한 한 제주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나 농가의 부산물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감귤 껍질을 증류해 만든 베이스 노트, 비 오는 날 채취한 편백 잎에서 추출한 오일, 그리고 유기농 농장에서 버려지는 허브 줄기를 재활용한 향료까지. 이러한 원료는 단지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로 포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 그 자체를 향수에 담기 위한 노력이다.

특히 ‘Forest Cloud’ 라인은 제주의 한라산 중턱에서 자라는 구상나무 잎을 직접 채취해 향을 만들었다. 매년 여름, 향 개발팀은 일주일간 숲에서 머물며 다양한 식물의 냄새를 수집하고, 증류한 원료를 테스트한다. 이런 방식은 느리고 비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깊고 진한 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향은 분명 다른 어떤 상업 향수에서도 느낄 수 없는 ‘제주의 시간’을 품고 있다.

또한 제품의 패키지 역시 친환경 원칙을 따른다. 재생 종이 포장, 리필 가능한 유리병, 지역 도예 작가와 협업한 향수 받침대 등. 브랜드가 추구하는 자연친화적 방향은 향기 외의 모든 요소에도 일관성 있게 스며들어 있다.

 

향기와 공간이 만나는 곳, 제르마나제이 쇼룸


제르마나제이의 쇼룸은 제주 애월읍의 작은 언덕 위에 있다. 건물 외관은 한적한 돌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작은 미술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내부는 인공조명이 거의 없고, 자연광과 나무, 돌, 식물들로 구성된 ‘느린 감각의 공간’이다.

각 향수는 이름별로 작은 전시 공간처럼 배치돼 있다. ‘Salt on Skin’은 소금 결정과 파도 소리를 담은 영상과 함께 진열돼 있고, ‘Winter Bloom’은 말린 동백꽃과 섬세한 일러스트, 동백나무 껍질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향수를 뿌려보는 게 아니라, 향을 경험하는 전시 공간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향의 방’이다. 이 방은 계절에 따라 주제가 바뀐다. 이번 시즌의 주제는 ‘제주의 여름 장마’였고, 방문했을 때 방 안엔 안개가 뿌려지고, 물방울 소리와 함께 편백향이 은은히 퍼지고 있었다.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정말로 제주의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방문자들은 이곳에서 나만의 향기 샘플을 제작하거나, 향기일기 쓰기 클래스에도 참여할 수 있다. 향수를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자신만의 기억을 향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다. 이 경험은 단순히 ‘향수를 구매하는 과정’을 넘어서, 나만의 감각적 기억을 기록하는 여행에 가깝다.

 

마치며: 향기가 머무는 섬, 기억이 머무는 브랜드
제주는 여행지다. 하지만 제르마나제이는 그 여행이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아니라, 코끝에 남는 공기까지 기억되기를 바라는 브랜드다. 향수 한 병 안에 담긴 제주의 바람과 햇살, 나무와 토양은 단순한 향을 넘어서는 감정을 남긴다.

서울에서 제주의 향을 꺼내 쓸 수 있고, 비 오는 날 ‘Forest Cloud’를 뿌리면 순간적으로 숲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다면, 그건 단순한 소비를 넘어선 감각의 여행 아닐까?

제르마나제이는 ‘느린 제작’, ‘지역성과 지속 가능성’, ‘공간과 향기의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단단한 브랜드 세계를 만들고 있다. 로컬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역할, 그리고 여행자에게 줄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이 무엇인지 이 브랜드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말해준다.

제주를 떠나도 제주가 머물 수 있다면,
그건 아마 ‘향기’라는 감각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