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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바다를 입다 - '바다, 옷을 짓다'

by cjsend1024 2025. 7. 28.

바다 쓰레기로 만든 패션 아이템 브랜드의 탄생과 의미

속초 바다를 입다 - '바다, 옷을 짓다'
속초 바다를 입다 - '바다, 옷을 짓다'

쓰레기에서 시작된 패션, 속초의 작은 공방 이야기


속초 중앙시장에서 바다 방향으로 걷다 보면, 골목 끝자락에 작은 공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평범한 회색 외관과 달리, 내부는 알록달록한 원단과 실뭉치, 그리고 독특한 질감의 가방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간판에는 조용히 이렇게 적혀 있다.
‘바다, 옷을 짓다’.

이 브랜드는 속초에서 활동하는 청년 디자이너 김하린 대표가 바다 쓰레기를 모아 만든 패션 아이템 브랜드다. 처음엔 ‘환경운동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원래 의류 전공자였다. 서울의 디자인 회사에서 몇 년간 일하다, 고향인 속초로 돌아온 뒤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그로 인한 생태 파괴에 충격을 받고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해양 쓰레기 수거조차 쉽지 않았다. 혼자서 매주 해변을 돌며 폐로프, 어망, 플라스틱 병 뚜껑 등을 모았다. 그중 일부는 녹이고 다듬어 지퍼고리, 태그, 장식물로 활용되고, 버려진 어망은 세척 후 원단으로 직조되어 가방이나 파우치로 재탄생했다.

그녀의 첫 제품은 ‘바다 파우치’.
속초 앞바다에서 수거한 파란 어망을 가공해 만든 파우치는, 한정 수량임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빠르게 완판되었다.

 

환경을 입는 디자인 – 바다와 패션이 만나는 방식


‘바다, 옷을 짓다’의 제품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별한 스토리들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대표 제품 중 하나인 ‘Sea Net Tote’는 버려진 어망을 세척하고 다시 짠 원단으로 제작된다. 표면의 거친 질감은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내부는 친환경 캔버스 원단으로 보강 처리되어 실용성을 갖췄다.

이 브랜드의 철학은 분명하다.
디자인이 먼저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 먼저라는 것. 그래서 제품 수는 많지 않지만, 각각의 제작 과정에 정성과 시간이 담겨 있다.

또한, 디자인 요소로는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 팔레트를 사용한다.
딥블루, 에메랄드, 모래빛 베이지, 조개껍질 화이트 등.
모든 색은 바다의 계절과 시간을 반영하며, 시즌별로 조금씩 달라진다.

제품마다 태그가 붙어 있는데, 이 태그에는

어떤 지역 해변에서 수거된 쓰레기인지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

몇 개가 제작되었는지
가 적혀 있다. 마치 “이 옷은 쓰레기지만, 가치 있는 쓰레기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다.

 

로컬에서 살아남기 – 브랜드가 선택한 느린 방식


‘바다, 옷을 짓다’는 대량 생산을 하지 않는다. 모든 제품은 한 땀 한 땀 손으로 제작되며, 일주일에 5~10개 제품이 만들어질까 말까다.
이 브랜드는 유통망도 독특하다.
속초 현지 공방 방문, 플리마켓, 그리고 자사 홈페이지만을 통해 판매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철학은 일부 소비자에게는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진짜 로컬’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울림을 준다.
그 덕분일까. 최근에는 속초시의 환경 프로그램과 협업을 맺어, ‘바다 청소 + 워크숍 + 나만의 파우치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지속 가능성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어린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김 대표는 인근 바다 마을의 어촌계와 협업해, 어민들이 버리는 폐어망을 수거해 오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민들 역시 ‘환경 보호’라는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고, 브랜드의 활동은 점차 지역 생태 보호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마치며: 바다를 입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
‘바다, 옷을 짓다’는 단순한 친환경 브랜드가 아니다.
그건 하나의 태도이자, 로컬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속초라는 바다 도시의 문제를 스스로 껴안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풀어낸 이 작은 브랜드는 지금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방향을 조용히 던지고 있다.

바다를 더럽히는 존재에서,
바다를 입는 존재로.

당신이 입는 그 가방 하나가, 어쩌면 오늘도 파도에 밀려올 플라스틱을 하나 줄였을지도 모른다.
속초를 방문한다면, ‘바다, 옷을 짓다’ 공방에 들러 직접 그 가치를 느껴보길 바란다.
거기엔 패션이 아니라 철학이 걸려 있으니까.